재욱의 노트

21살 대학생이 스타트업에 뛰어들었고 잘렸다.

재욱
재욱Nov 7, 2023
5 min read|

불안했지만 인정받았다. 그리고 쫒겨났다.

취업했다. 알바할 나이에, 음식점 알바생도 스타벅스 정규직도 아닌 개발자로.

나는 중3때부터 사업을 시작한 나보다 1살 어린 고등학교 후배에게, 카톡을 받았다. 창업 멤버로 합류해주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기뻤다. 내가 이정도구나 싶었다.

이 후배는 꽤나 자주(?) 창업을 했다가 접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가를 반복한 친구였고 나도 이 후배가 새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보다 개발자로서의 능력은 훨씬 뛰어났고, 그런 능력을 활용해 어린 나이부터 과감하게 이것저것 시도하는 모습이 평소에 그 친구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친구에게 창업 멤버로 합류해달라는 요청을 받다니. 인정 받은 것 같았다.

그런데 나에게 합류해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내 실력에 대한 무의식적 의문이 이유였을까.

새로운 시작 그 설렘

본격적으로 그 친구와 만나서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동료들과 술도 마셨다. 이때까진 크게 별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한 보람이 있구나, 이 나이에 나같은 사람이 어디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나에게 심취하는 정도의 생각 외에는 말이다. 빨리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서 설레기도 했다. 친한 친구들에겐 자랑도 했다. 나 창업했다고.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고.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단지 파티에 끼고 싶었을 뿐이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외로움과 불안함이었다. 계속 겉돌았다. 너무 훌륭한 동료들과 대단한 대표 사이에서 내 모습은 영락없이 초라했다. 멋지게 와인잔을 들고 우아하게 서로의 잔을 부딪히는 사람들. 나는 거기서 고작 와인따위 마셔본 적도 없지만 잘 아는 척 연기하며 파티에 끼기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그냥 그 파티에서 하객 알바쯤이라도 좋았다.

메인 스테이지에 서고 싶은 것이 아니다. 뭐 이왕이면 그렇게 놀면 좋기는 하겠다. 원래 보통 내가 주연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 상태를 보면 당장이라도 연회장에서 끌려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할 것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할당되었던 자잘한 Task들은 진작에 끝냈고 애초에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니었기에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일을 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내가 다른 동료들처럼 무급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솔직히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알고 뽑았으면, 업무를 할당해주면서 따라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변명해 보자면 그랬다. 근데 사실 뭐 내가 실력이 CTO만큼 충분히 좋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내가 더 성장해서 회사를 내 것으로 만드는거야. 그렇게 일하자.

하지만 내 실력에 대한 의문을, 무의식에 있었던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자존감은 점점 떨어졌고 회사에서는 동료들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괴로웠다.

나를 대체 왜 데려온거야?

대뜸 어느 날 내가 대표에게 물었다. 그때의 상황에서는 '대뜸'은 아니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건 스스로 불안감을 심하게 갖고도 꽤 시간이 지나서 던진 말이었다. 당장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잘릴 위기에 처해있어 불안하다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나를 무기력하게 그리고 의미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게 싫었다. 뭐라도 손에 잡혀있지 않으면 환멸감을 느끼는 게 나였으니까.

저는 형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믿어요. 그리고 형 뭐든 열심히 하시잖아요. 열정있게 잘 해줄 것 같아서 데리고 온거에요.
우리가 형을 버릴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 없어요. 오히려, 형이 성장해서 형이 우리를 버릴까 봐 걱정이에요.

그들은 내 불안한 입지를 아는 듯 말을 꺼냈다. 나는 내 불안함이 기분탓이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솔직히 감동받았다.

나는 내가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찾기 시작했다. 회사의 문제가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했기에 PM 겸직을 진지하게 고려해보기도 했다. PM이라는 게 단순히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간다기보다는 관련 기술을 알고 있어서 그것을 수행하는 기술자와도 소통이 원할하게 되어야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결과적으로 이정도 규모의 회사에 PM은 너무 과분하다는 견해가 있어 없던 일이 되었지만...

'회사'에서 '우리'로

그렇게 일을 시작한지 한달 즈음 지났을까. 나는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문제점을 상기했다. 바로 소통이 안된다는 것. 내가 질문을 해도 정확히 뭔지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고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몰랐다.

팀에서 문제를 찾는다면 소통이 안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바로 고개만 돌리면 대화할 수 있는데 대화를 하지 않았다. 사업의 자세한 방향성과 세부 계획, 설계는 대표만 알고 있었고 이외의 사람들은 뭉퉁그려 알고 있는 것이 팀 전력의 큰 손실로 이어졌다.

근데, 내가 더 많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니 진짜 업무가 할당되었다. 내가 할당되도록 만들었다고 해야 더 맞을 것 같기는 하다. CTO에게 할 것이 뭐가 남았냐고 물었고 남은 업무를 말해주었다. 솔직히 남은 업무가 무엇인지를 알았을 때는 겁이 났다. 내가 잘 아는 분야도 아니었고 해 보지도 않았기에 겁이 많이 났다. 그때 나는 내가 내가 그걸 맡아서 하겠다고 했고 드디어 한 달만에 제대로 된 업무가 할당되었다.

업무가 할당되자 내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점점 프로젝트가 어떻게 굴러가는 지, 뭘 해야할 지 윤곽이 잡혔고 실력도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드디어 나의 것이 회사 프로덕트에 담기기 시작했다. '회사'가 '우리'가 되는 순간 내 열정은 최고조에 달했다.

난생 처음 보는 기술을 다뤄야 할 순간들도 굉장히 많았는데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다 잘 헤쳐나갔다. 계속 리서치하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봤던 걸 또다시 보고, '왜 이렇게 구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스스로 반론하며 성장해나갔다.

대표가 말한 '형의 가능성'을 내보이기라도 하듯 나의 입지는 점점 좋아졌다. 중요도가 높은 업무도 맡아서 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면 내 머릿속은 workflow로 꽉 차있었고 퇴근을 할 때면 머리 위로 DB 구조가 떠다녔다. 일이 너무 좋았고 미쳐 살았다.

나를 인정 받았다

회사에 온지 두달 즈음 되던 날, 대표가 문득 나에게 말했다. 곧 월급 인상 계약이랑 스톡옵션 계약이 있을 거란다. 순간 난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입지가 좋아지고 있고 필요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무의식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은 공식적으로 나를 인정받는 순간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이사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이미 내부에서도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단다. 미칠듯이 기뻤다. 다른 사람에게 내 실력과 능력을 인정 받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잘렸다.

그런데 어느 날 대표가 회의를 소집했다. 경영 상의 문제였고 회사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에 베팅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듣고보면, 회사 입장에서는 나를 자르든 뭘 하든 해서 고정비를 최대한 줄이고 그쪽에 투자를 하는 게 맞지. 채용 예정되어 있던 것들도 다 취소하고.

경영 상의 관점에서 그리고 회사 입장에서 보면 그게 맞았다. 당연히 설마 나를 자를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그리고 내가 뱉은 말은 뒤늦게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결정했어. 사무실도 빼고, 형. 이제 그만하자.

...어? ....

나 월급 안 올려줘도 되니까, 그냥 이대로 받아도 전혀 상관 없으니까, 애초에 난 돈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그렇게 해도... 내가 잘리지 않는 경우의 수는 없는거야?

...

1시간 전만 해도 구조를 설계하며 들떠있던 나인데, 1시간 만에 갑자기 그렇게, 회사에서 쫒겨났다.

회의가 끝나고 난 자리에 앉아서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근데 갑자기 대표가 퇴근하라고 하는 것이지 뭐냐. 난 당연히 월급날까지 남은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최선을 다해 일하려고 했는데, 그냥 그렇게 끝난 것이었다.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미 이 회사는 내 회사나 다름이 없었지만, 정리할 시간조차 없었다.

난 한순간에 3년간 봤던 친한 회사 대표이자 고등학교 후배를 잃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겐 가족과도 다름이 없었던 너무나도 소중한 동료 3명을 잃었다. 어쩌면 대표는 경영자로서 출중하다고 해야되나. 그렇게 내 영혼을 담은 직장을 잃었다.

이틀 뒤 짐을 빼면서 사무실을 떠날 때 그제야 실감이 났다. 동료들 앞에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꾹 참고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일어서려 한다. 긴 기간동안 이어졌던 무기력을 걷어내고 다시 일어서려 한다. 한순간도 멈출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 것이다.

이제 다시 나는 나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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